08.10.03-경제특강 후기

이번 강의가 최근 미국의 금융위기를 이해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셨는지요.
강의를 마친 후 여러 학생들에게서 시간이 모자라 아쉬웠다는 반응을 들었습니다. 당연하지요. 60개나 넘는 슬라이드 분량인데요. 그 시간에 그 정도 진도라도 나갔으면 성공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강의가 어려웠다는 얘기는 많지 않아 다행입니다. 사실 저는 강의 준비하며 정말 어려워서 혼났거든요.

그날 모두에 말씀드렸지만 지난 몇 주 이와 관련된 주제로 TV 토론이나 특집 출연 요청을 몇 차례 받았습니다. 물론 이 주제는 많이 알지 못한다고 사양을 했습니다. 저는 TV 토론은 정말 자신이 없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이런 저런 질문들 순발력 있게 답하려면 정말 많이 알아야 합니다. 저는 “주제가 있는 토론에서 가장 말 잘하는 사람은 그 분야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늘 합니다. 적당히 준비하고 토론에 임하면 말장난이나 하고 오기 일쑤지요. 사실 신문기고도 사양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신문은 준비하고, 수정할 시간이 있으니 가끔 쓰지요.

하지만 이번 특강 요청의 경우 교수의 입장에서 학생들이 필요로 하면 배워서라도 강의를 하겠다는 생각에 응했는데, 막상 강의 준비하며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생소한 개념이 많아 기본적인 것을 설명하기도 쉽지 않은데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조적 맥락에서 이 문제를 따져보고,  덧붙여 한국경제까지 다루려니 정말 강의 준비 자체가 저에게는 도전이었습니다. 어차피 양이 많아 셋째 part인 한국경제까지는 기대를 못했었는데…나중 만난 학생들이 그 부분을 듣지 못해 아쉽다는 말을 많이 하더군요. 그래서 다음 주 목요일 같은 시간(다세 시간)에 한국경제 부분 못한 것을 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B152, 10.9목 330-445). 물론 빈 자리가 더러 있으므로 외부 청강도 환영합니다.

제가 정작 아쉬웠던 것은 시간이 아니라 (이건 예상했던 문제이므로) 강의 초반에 진행 교수님이 여러모로 저를 좀 재미있게 소개하려 싸이트 대학사계에 있는 두 글 (나의 공부비결, 비인기교수의 비애)에서 일부 내용을 인용하신 부분이었습니다. 글의 맥락과 무관하게 한 두 문단만 뚝 따오는 것이 얼마나 오해를 낳을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의도이건 ‘남을 말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것 등의 생각이 떠오르는 군요.

제가 박사과정 시절 약골이었다 운동을 열심히 하게 된 경험을 쓴 것은 운동이 얼마나 공부에 도움이 되는 지를 정말 절실하게 느꼈기, 아니 절박하게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장기전이 되는 공부에는 체력이 제일이라는 저의 소중한 경험을 남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쓴 글인데, 여기에서 딱 한두 문장 따와…”이제는 100K 가까이 Weight를 들 수 있습니다” 식으로 내가 자화자찬 한다고 청중에게 말하니 정말 듣기 거북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요즘 Weight는커녕 뱃살과의 전쟁에 시달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도 이것은 애교지요. 스승의 날 관련한 부분은 정말 얼굴이 붉어졌었습니다. 어느 해 스승의 날 아침 라디오 방송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좋은 선생의 조건'이 무엇이냐는 서베이 결과를 들었습니다.  2위부터 5위 까지가 "재미있는 선생, 잘 사주는 선생, 공부 외의 세상 얘기 많이 해주는 선생…" 등이었습니다. 그리고 1위는 “차별하지 않는 선생” 이었습니다. 당시 이 얘기를 들으며 나는 과연 내가 차별하지 않는 선생인가…부끄러움을 느꼈고 그런 생각을 좀 재미있는 어투로 쓴 것입니다.  즉, “2위..5위 조건은 나도 해볼만 한데, 1위는 참 부끄럽다” 뭐 이런 식으로 글을 썼는데…난데 없이 저를 “세상 얘기 많이 해주는 사람, 강의 재미 있게 하는 사람, 학생들 많이 사주는 사람”을 자처하며 자화자찬 하는 교수라고 소개를 했으니 황당할 수밖에요.

아무리 선의래도 “남을 얘기할 때는” 누구나 신중해야 하는 법입니다.  가능하다면 "남을 말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정말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남의 말을 너무 많이 하는 편입니다. 우리 스스로도 툭하면 그 사람 어떻니 하면서 이런 토론을 조장하지요. Please, don't discuss people!

학생들에게 공정성을 지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저에게는 중요한 원칙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학교에 부임할 때 당시 총장과 면담을 했는데 그 분이 "Yale에서 우수한 학생들 가르치다 여학생들 가르치면 재미 없지 않겠어요.." 라고 질문을 하더군요. 정말 놀랐습니다. "저는 Teaching은 좋은 아이들 골라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든 지금 상태에서 더 낫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라고 답한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저는 평소에 여학생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다 그냥 학생이지요.

저는 가끔 학기 초 학생들에게 공개적으로 "강의는 널널해도 성적은 정말 공정하게 줍니다" 라고 말합니다. 실제, 시험 답안이 5점 짜리라도 1점, 2점 각종 경우의 수를 나누어 정밀하게 채점합니다. 덕분에 저는 아직까지 학생들의 성적을 정정해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도식적인 자기 합리화 말고 정말 모든 면에서 내가 공정한 가 하고 자문해보면 솔직히 예라고 말할 자신이 없지요.

그런데 이번에 특강 준비를 하며 나는 그 동안 깨닫지 못한 것을 하나 느끼게 되었습니다. 즉, 앞에 언급한 좋은 선생의 조건들 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이 “강의 준비를 성실히 해 강의 자체를 충실히 했냐” 라는 질문이지요. 윽, 마구 찔리네..누가 자꾸 찌르지? 사실 이번 특강은 개념도 어렵고, 틀 잡기도 어려워서 어렵게 준비 했습니다. 미리 읽고 생각하기 1주일, 본격적으로 강의안을 쓴 것이 1주일…아마 1시간 강의를 이렇게 많이 준비한 적이 없을 것입니다. 공치사 하려고 이 얘기 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 강의도 좀 이렇게 준비하면 어떨까 하는 자괴감이 (쬐끔, 아주 쬐끔..) 들어서 하는 말입니다 (ELSP!!...다세 듣는 학생은 다  아는 용어지요..ㅎㅎ).

뭐 이런 자격지심(ELSP!!)이 있었기 때문에 그날 진행하신 교수님이 별 생각 없이 재미로 그렇게 말했을 때, 청중들은 그냥 웃고 넘어갔지만, 정작 저는 당황했나 봅니다. 아무튼 아쉬운 대로 강의가 잘 끝나 마음이 놓입니다. 저도 이번 강의 준비를 하며 소득이 많았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생소한 주제라도 시간을 많이 쓰고, 집중하면 뭔가 감이 온다.” 뭐 이런 생각이지요. 저도 이 주제를 대충은 알지만 그냥 적당히 넘어갔는데 이번에 집중적으로 들여다 보니 생각이 많이 바뀌더군요. 적당히 언론 매체에 흘러나오는 얘기들이 매우 misleading할 수 있다는 점도 알게 되었고 .

가끔 주변 학생들에게 너무 과목을 벌리지 말고, 좀 줄여서 집중해 보라는 애기를 합니다. 설사 7과목 다 A를 맞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상대적인 Ranking의 결과일 뿐이지요. 남는 게 있나요?  예컨대 5과목 듣고 A를 맞는 경우 지식의 절대적 크기가 다를 수 있겠지요. 지적 능력도 커질 것이고. (“수업의 악순환” 얘기는 나중 대학사계에서 한번 다루겠습니다).  

어쨌든 좀 쉽게 생각하고 이 주제를 다루기로 했는데, 뜻밖에 시간도 걸리고 느낀 점도 많았습니다. 저의 좌우명인 "배우는 것 앞에서는 겸손해야 한다" 가 재삼 상기되기도 하구요. 흠,  그래도 이 좌우명이 제 좌우명 시리즈 중에서는 제일 폼나는 것입니다. 다른 것들은...."안되는 것은 안되는 거다" "가늘고 길게 살자" “70%면 OK OK”  대충 이런 식입니다. 우리 싸이트에 "대충사는 여자"라는 컬럼이 있는 것도 저의 인생관이 나름 반영된 것입니다.

뭐...대충 살다 어쩌다 한번 계기가 되면 찐하게 반성하고...그리고 다시 대충살고...이렇게 살면 우울증 절대 안걸리지요. 자살하지 마세요. 죽어도 꼭 죽어야 한다면 계좌 비밀번호, 신용카드…이런 것 선물하고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