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후배님들. 저는 이화여대 경제학과 예비 졸업인입니다. 졸업 전에 후배님들께 제가 이화를 통해 누릴 수 있었던 특별한 혜택들을 소개하고자 이렇게 글을 적습니다.
저는 우연히 학교 게시판에 하버드 썸머 스쿨에 참여할 학생들을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지원을 결심하였습니다. 당시의 선발과정은 영문에세이, 영문 학업 계획서를 통한 서류 전형과 그 이후 교수님과의 일대일 면접 전형이 있었습니다. 에세이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작성했고 유학생인 남동생의 교정을 받아 제출했습니다. 면접은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서 진행했는데 일대일 면접이라 비교적 편하게 임했습니다.
학교 기숙사에서 하버드 친구들과 직접 지내는 프로그램이라 난생 처음 기숙사에 짐을 풀었습니다. 기숙사 1층에는 하버드 남학생들이, 그리고 2층에는 하버드 여학생들과 저희가 지냈습니다. 경비아저씨가 남학생들이 여학생 방인 2층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막대기를 들고 지키고는 했는데(왜냐하면 덥다고 남학우들이 윗 옷을 입지 않고 돌아다녔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두고두고 하버드 친구들이 참 재미있어 했습니다.
수업은 알차게 꾸며졌습니다. 으례 그렇듯 달달달 외울 것을 받아 드는 대신 한국의 입시제도부터 북한의 현 정권에 관한 것까지 온갖 종류의 심도있는 토론이 이루어졌습니다. 멋진 백인 교수님이셨는데 한국의 역사부터 드라마, 영화배우에 이르기까지 모든 걸 알고 계셔서 참 신기했습니다.
수업을 위해 매일매일 엄청난 양의 리딩을 해가야 했지만 나중에는 친구들과 스터디 그룹을 조직해 각자 읽고 공유하는 방법을 동원하거나, 나중에는 그마저도 귀찮아져서(!) 그냥 내용만 대강 훑어보고 가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혹독한 과정을 통해 당시 리딩 실력이 엄청 늘지 않았나 싶습니다.
교수님도 학생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매주마다 야외수업을 가장한 다양한 곳의 답사를 진행시켰습니다. 윤보선 대통령의 생가라던가 혹은 판문점, 남대문, SBS 등 한국에 사는 저로써도 처음 가보는 장소에 이르기까지 서울 곳곳을 신나게 누비고 다녔습니다. 한 여름이었지만 친구들과 함께여서 마치 고등학교 시절의 즐거운 소풍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물론 이 수업의 하이라이트는 친구들과 함께했던 추억입니다. 한 달이 넘는 기간동안 매일매일 붙어다니며 한 기숙사에 살고 이러다 보니 그만큼 에피소드도 많고 정이 참 많이 들었습니다. 경비아저씨 몰래 하루종일 방에서 수다도 떨고, 누군가의 생일이 있을 때면 모두 모여 파티도 하고, 또 신촌 곳곳의 클럽, 술집 등도 밤새워 참 열심히 다녔습니다. 다함께 수영장, 바다에도 갔고 선생님 별장에도 다녀왔고... 아, 그리운 추억을 되짚어 보니 참 끝이없네요.
하지만 영어의 경우, 수업 자체는 따라가기가 어렵진 않지만 토론에는 단 한 마디도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의 영어는 그래도 이해하기 쉽지만 또래 아이들이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영어와 현란한 말발(!)에는 도무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수업을 들으며 교환학생에 도전해야겠다는 나름의 결심을 하게됩니다.
이 하버드 썸머는 우리학교의 수업료를 내고 하버드에서 제공하는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당시를 회상해보면 수업을 들으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던 것 같습니다. 이화의 수업과는 조금은 다른, 학생이 주축이 되는 소규모의 수업을 처음 경험해본 탓일 것입니다.
특히 부러웠던 건 자기 의견을 논리적으로 말할 줄 아는, 하고 싶은 일은 주저없이 하고야 마는 아이들의 거침없는 생활 태도였습니다. 이 친구들과 생활하면서 그 이후 저의 삶의 태도도 보다 적극적으로 바뀌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수확은 이런 좋은 수업에 전혀 참여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스스로의 초라한 모습을 경험해 볼 수 있었던 점입니다. 수업 막바지에는 한 달 내내 뒷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경청(!)만 하던 나의 모습에 대한 도전 욕구가 마구마구 솟아올랐습니다. (덕분에 급작스레 지원했던 교환학생 시절, 스스로를 엄청 업그레이드 할 수 있었습니다.)
부디 후배님들도 부지런히 준비하셔서 스스로를 채찍질 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보시길 바랍니다.